[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아이다 루피노는 왜 영화사에서 잊힌 이름이 됐을까? 오는 27일부터 열리는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회고전 섹션에서는 1950년대 할리우드의 유일한 여성감독으로 활동했던 아이다 루피노의 영화들이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할리우드 고전 시기의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아이다 루피노는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미국이나 세계 영화사에 관한 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다 루피노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사실상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으며,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 제작자로도 성공한 상당히 드문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멜로드라마와 필름 누아르를 아우르는 저예산 장르 영화의 탁월한 장인이었음을 고려해볼 때, 그녀의 이름이 영화사에서 이 정도로 잊혔다는 것은 이상할 정도다.

루피노는 메이저 스튜디오에 소속된 할리우드의 스타였고 '하이 시에라'(1941)와 '빅 나이프'(1955) 같은 영화에서 자신감 있고 지적인 팜므 파탈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카메라 앞의 역할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1949년 루피노는 당시 소속사였던 워너브라더스를 떠나 필름메이커스라는 저예산 독립영화사를 설립했고 이후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까지 여러 역할을 도맡으며 총 7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루피노는 여러 면에서 놀라운 선구자였다. 그녀는 누아르 영화를 만든 최초의 여성감독이었으며, 당시에는 금기시되던 혼외임신, 중혼, 강간 등의 여성 문제를 영화화했다. 그리고 이 민감한 주제들에 전혀 선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여성의 관점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여성 주인공에게 누아르의 장르적 장치인 독백과 보이스 오버, 주관적인 시청각적 표현을 부여하는 '두려움 없이', '아웃레이지', '거칠게, 빠르게, 아름답게'는 남성중심적인 세계와 갈등하고 부딪히는 여성의 관점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한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히치하이커'는 전후에 만들어진 다른 누아르 영화와 달리 남성 주인공을 영웅화하지 않으면서 남성성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텔레비전으로 옮겨 '트와일라잇 존' 등을 연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던 아이다 루피노는 장르 영화에서 여성의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셀룰로이드 천장을 깨고자 하는 여성 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바 있다. 루피노의 영화적 세계는 그런 면에서 더 많이 조명 받고 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번 회고전에는 루피노가 연출한 6편의 영화 상영과 더불어, 아이노 루피노에 대한 특별 강연도 준비돼 있다. 다음 달 1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캠퍼스복합단지 ECC극장에서는 '호기심의 찬장: 여성, 기억 그리고 영화사'의 저자이며 아이다 루피노 전문가인 아멜리 헤이스티 교수가 '아이다 루피노,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다'라는 강연을 통해 루피노의 영화 세계를 소개한다.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8일간 서울 메가박스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 등 신촌 곳곳에서 열린다.

[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서울국제여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