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인터스텔라’-‘마션’, 그들이 찾은 각각의 답에 관하여
2015. 11.19(목)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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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의 영화뒤집기] 지구에서 머나먼 곳, 화성에 사람 하나가 남겨졌다. 갑작스레 불어 닥친 돌풍에 몸을 급히 피하던 우주대원들이 그만 동료 한 명을 놓치고 만 것이다. 모두 그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살아남았고, 구조선이 올 때까지 꼼짝없이 홀로 화성에 붙들려 있어야 할 운명에 처했다.

영화 ‘마션’의 이야기다. 재미있는 건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열연한 맷 데이먼이 앞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외따로 떨어진 행성에 홀로 남는 역할을 했었다는 점이다. 특출 난 능력과 인류를 구하겠다는 영웅적인 열의를 띠고 지구를 떠나 온 ‘만 박사’란 사람으로, 자신이 믿고 추진해왔던 게 결국 가설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살기 위해, 오로지 살기 위해 치졸하게 변한다고 할까. 그리고 그 치졸함으로 결국 파멸에 이르는, 다소 풍자적인 요소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물론 ‘마션’에서의 ‘마크 와트니’는 다르다. 아무도 없는 화성에서 특유의 유쾌함과 낙천적인 태도로 최초의 화성인(martian, 마션)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다양한 활약을 펼치며 살아남으니까. 자신이 뛰어난 식물학자임을 자각하여 그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일, 무려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데 성공하며,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의 성격은 오래된 패스파인더를 찾아 지구와의 통신을 성사시키기까지 한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마크가 화성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안 후 우여곡절 속에 시작된 나사의 구조노력은, 전공분야, 국적 등과 상관없이 서로 머리를 맞대게 한다. 오직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구할 수 있는 방법, 해답을 찾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게 만들었으니 말 다 한 셈 아닐까.

하지만 ‘마션’은 ‘오직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가 협력했다’는 인도주의적 관점만을 전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인간의 능력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의지나 이성, 그로부터 비롯한 생존력이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절망으로 가득한 곳에서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관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죽을 것이 아니라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또 그것을 해결하고 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

실질적으로 마크를 도운 건 그가 그동안 쌓은 과학지식인 동시에 이 같은 지적 능력을 신뢰하고 공유할 수 있었던 지구의 수많은 전문가 집단이다. 비록 어떤 이익관계를 떠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서로 돕는 모습은, 과학기술의 발달 혹은 문명의 발달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그려내는 듯도 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는 이러한 윤리적인 대목마저도 인간의 능력치에 포함시키며, 충분히 선할 수 있는 인간의 동기와 노력이 끊어지지 않는 한 ‘늘 그랬듯이 우린 답을 찾을 것’이라고, 인간이란 그러한 존재라고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같은 우주, 그 우주에서의 조난(각자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지만 뭉뚱그려서 ‘조난’이라 친다면)을 그리고 있음에도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가 취한 자세와 좀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주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긴 하다만 우선 이는 배제하고, 가장 큰 차이로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에서 표현하는 인간의 능력엔 분명한 한계치가 존재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는 갑작스런 사건(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가 날라 온다거나 믿어 의심치 않던 이의 계획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거나 예상하지 못한 모래폭풍을 만난다거나)이 터지자, 작품 속 주인공은 아무런 대응도 반응도 하지 못한다. 그저 잠자코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까진 세 영화가 동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 혹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복귀하는 과정에서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인간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삶을 존재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거대한 가치, ‘사랑’에 의지하며, ‘인터스텔라’의 쿠퍼(매튜 맥커너히) 또한 가족을 향한 ‘사랑’이 동기였기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시공간을 넘을 수 있었으며 결국 사랑하는 딸의 곁에 이를 수 있었다.

‘마션’은 어떠한가. 마크가 화성에 홀로 남고 구조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오로지 위기상황 앞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인간의 이성, 뛰어난 지적능력에 의해 진행된다.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동료애나 인류애, 절망에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 등, 갖가지 가치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마션’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의 존재를 한층 더 빛나게 하는, 감성적인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 그것보다는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미지의 우주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더욱 중요시된다고 할까.

매해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탄생하고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만큼 우주와 밀접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가 신경을 기울여야 할 건, 영화 속 이야기들이 언제쯤 현실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새롭게 확장될 삶의 공간인 우주, 그 속에서의 인간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즉, ‘가치’에 관한 문제다. 이 맥락 위에서 ‘마션’은, 주인공의 캐릭터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라 해도,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보단 좀 더 가볍고 좀 더 위험한 영화가 될 수 있으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마션’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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