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철중 기자] “아저씨 무슨 반찬 좋아해?” 60~70년대 영화팬들은 사랑방 아저씨와 엄마 사이에서 사랑의 메신저가 된 옥희의 순수한 눈망울을 기억한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서 옥희를 연기한 아역배우 전영선은 ‘옥희=전영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이 영화의 원작인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년 발표)의 화자 옥희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순진무구한 동심으로 많은 이들의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했던 ‘옥희’ 전영선은 1960년대 우리나라 대표 아역배우로서, 그 시대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옥희’로 기억되고 있다.

아역스타 전영선은 그 특유의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척박한 어른들의 세상에 숨통을 트여주고 삶의 애환에 고통 받는 어른들을 잠시나마 웃음 짓게 만드는 힘을 지닌 배우였다.

1953년 생인 전영선은 유명 작곡가 전오승의 딸이자 당대의 톱가수이자 배우였던 나애심의 조카가 된다.

나애심의 딸은 1989년 ‘디디디’란 노래로 그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김혜림(49)으로 전영선의 고종사촌 동생이 된다.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전영선은 1세대 연예인가족의 식구로 일찍부터 연예인 ‘끼’를 이어받고 발휘했던 셈이다.

아버지 전오승은 1923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홀로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 그는 정동방송국(HLKA) 경음악단 전속 기타리스트, 중앙방송국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작곡가로 변신,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가수 명국환과 콤비를 이뤄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울지 마라’, ‘아리조나 카우보이’, ‘공주의 비련’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명국환의 히트곡 외에 지금도 노래방의 ‘옛노래 베스트’에 포함되는 박재홍의 ‘휘파람 불며’, 박재란의 ‘럭키 모닝’, 김용만의 ‘여반장’ 같은 히트곡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또 여동생 나애심을 위해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 등 인기곡을 만들어 남매 대중가요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전오승은 1978년 ‘전우가 남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정리하고 198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L.A에 정착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부른 가수 허성희는 이 노래로 1978년 TBC 방송가요대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다음해 동명으로 이원세 감독이 영화화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바로 전영선이다.

전영선이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그의 나이는 5살이었다. 고모 나애심의 친구였던 홍은원 감독(1922~1999)의 추천으로 이강천 감독(1921~1993)의 ‘종말 없는 비극’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를 추천한 홍은원 감독은 한국 영화사상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다. 첫 번째 여성 영화감독은 1954년 ‘미망인’을 연출한 박남옥이다. 홍은원은 수재들만 모였다는 경기여고 출신으로 1959년 ‘유정무정’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한국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전영선을 영화계에 데뷔시킨 이강천 감독은 1954년 ‘아리랑’을 첫 연출작으로, 71년 ‘타인이 된 당신’에 이르기까지 17년간 28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강천 감독은 허장강(아리랑), 김진규(피아골), 최지희(아름다운 악녀), 그리고 전영선 등 당대에 이름을 날린 배우들을 배출시킨 스타 제조기였다.

전영선의 데뷔작 ‘종말 없는 비극’은 6.25 한국전쟁이 낳은 가족의 비극을 그린 멜로드라마로 박암 한미나가 주연을 맡았다. 여기에서 전영선은 한미나의 딸로 등장,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천재적 연기력을 발휘했다.

성공적 데뷔 이후 전영선에게는 충무로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독보적인 아역스타로 인기를 모았다. ‘1960년에는 신상옥 감독의 ’이 생명 다하도록‘에 출연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특별상을 수상,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아역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1961년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통해 제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장려상을 수상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아역스타로 떠올랐다.

전영선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성인연기자로 발돋움한다. ‘미스 영의 행방’(1975, 박남수 감독), ‘왕십리’(1976, 임권택), ‘한네의 승천’(1977, 하길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이원세)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성인연기자로서의 전영선의 인기는 아역스타 시절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임예진 등 하이틴스타의 인기가 높던 시절이라 그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차츰 그를 찾는 충무로의 발길이 뜸해졌고 이에 한때 우울증에 빠져 두문불출, 영화계와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 1983년 아버지 전오승에 이어 언니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영선의 소식은 국내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서서히 그는 잊히고 있다. 이런 때에 한국영상자료원이 그를 기억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7~8월 기획전으로 ‘‘옥희’의 영화들‘이란 제목으로 ’아역스타 전영선 특별전‘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아역스타 전영선의 모습을 담은 영화 11편이 상영된다. 대표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비롯해 ‘이 생명 다하도록’, ‘노다지’,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이 상영 목록에 포함됐다.

이들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를 통해 VOD로 서비스되며,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티브이데일리 윤철중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