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인생 적신호 뜬 세 남자의 제주도 일탈 여행을 그린 '올레'에서 박희순 신하균 오만석이 제대로 뭉쳤다.

8월 25일 개봉될 영화 '올레'(감독 채두병·제작 어바웃필름)는 40대를 코 앞에 둔 세 친구가 제주도로 조문을 떠나며 벌어지는 4박 5일간의 일탈 여행을 그린 영화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 제주도의 풍광과 낭만이 가득한 영상미를 기대하는 이들이라면 일찌감치 기대를 접는게 좋을 것 같다.

영화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이성과의 원나잇에 혈안된 '찌질한' 남자들의 본색을 사실대로 그려냈고, 이 과정에서 여자가 성적 대상으로 부각돼 소비되는 것 또한 일부 관객들에겐 불쾌함을 유발하는 요소다.

본래 전달하고자했던 '힐링' 메시지는 이처럼 '찌질하고 불쾌한' 상황들에 가려져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희순, 신하균, 오만석 세 배우들의 시너지와 캐릭터적인 측면만큼은 더할나위없이 반갑고 유쾌하다.

'연기신' 신하균은 대기업 과장 중필 역이다. 그의 말마따나 "10년을 개처럼 일했는데 하루 아침에 잘린" 인물이다. 딸린 처자식이 없단 이유다. 이에 분노하지만 실상은 소심함의 극치다. 대학시절 기타 동아리 첫사랑과 함께 간 제주도 MT에서 분위기에 취해 고백은 하지만, 막상 남자답고 터프한 선배와 첫사랑이 어울리자 걷잡을 수 없이 질투하면서도 내색 한 번 못한다. 첫사랑에 그 선배와 잤느냐고 묻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찌질남'은 그후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 질척대고, 새로운 사랑 앞에서도 제대로 용기 한 번 못낸다.

날카롭고 냉철한 캐릭터로 카리스마 연기파 배우로 각인된 박희순은 일생일대의 코믹 연기를 불사른다. 그가 맡은 수탁 역은 그야말로 '찌질함'의 극치다. 13년째 고시생이 사시 폐지란 청천벽력 앞에 좌절해 제대로 망가지는 인물. 세상에 대한 불만과 패배감은 성적 욕구로 표출돼 시도 때도 없이 '섹스 하고 싶다'를 외치고, 민폐에 민폐를 거듭하는 인물을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가히 충격적인 연기 변신이다.

시도때도 없이 티격태격하는 중필과 수탁을 중재하는 케이블 방송국 간판 아나운서 은동 역은 오만석이 맡았다. 앞선 두 사람에 비하면 분량이나 존재감은 미비한 편이지만,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과 번듯한 아나운서의 매력을 잘 표현했다. 또 싱글남 두 친구들의 일탈 행위에 못 이기는 척 이끌리는 유부남이지만, 극 중 간암을 앓는 설정이라 못 말리는 두 친구를 마냥 허허실실 웃으며 바라보는 애잔한 모습이 오히려 극대화된 감정신보다 더 절제된 슬픔의 여파를 느끼게 한다.

이런 '찌질 아재'들을 세 배우는 몹시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성으로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세 남자임엔 틀림없지만, 현실에도 있을법한 유치하고 허세 가득한 남자들의 본색을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유감없이 까발리는 이들이다.

실제 배우들의 끈끈한 친분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세 친구의 오랜 우정을 더욱 극대화한다.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즐기고, 이성에 대한 지나치게 솔직한 언행, 적나라한 욕설과 싸움, 그럼에도 실제 본심은 친구를 생각하는 진심어린 우정이 충분히 공감되는 요소다.



'올레'는 이처럼 남들이 볼 땐 번듯한 직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중년남'이지만, 이들도 알고보면 말 못할 고통과 아픔이 있고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다. 그리고 꼭 정해진 길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내포하며 힐링을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노련하지 못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남녀 관계에 주력하느라 '올레'의 의미를 부각할 수 있는 제주도의 풍광을 담아내는 것 또한 미미했고, 한참 성적 코드를 내세우다 후반부 갑작스러운 마무리로 결말을 내자니 도리어 의도된 시퀀스의 영향력도 발휘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낭떠러지 신에서 죽음 앞에 선 세 친구가 절망적인 곳에서 도리어 새로운 희망을 얻고, 이후 이들이 제주도를 간 '진짜' 목적이었던 선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실제 죽음과 직면한 뒤 이를 실감해 펑펑 우는 신이다. 이전의 유치하고 찌질한 세 남자를 부각하다보니 해당 신의 의미와 중요함은 그저 황당한 주책으로만 여겨질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친구의 캐릭터만큼은 너무도 매력적이라 이를 제대로 활용한 한국판 '행오버'가 보고 싶어질 정도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올레' 포스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