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충무로가 해마다 다양한 장르물을 선보인다지만, 여성이 주체가 되고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 영화의 편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 와중에 여성이 말하고, 여성이 공감을 부르며, 여성이 꾸려가는 올해의 영화는 단연 ‘미쓰백’일 것이다.

제작비 약 16억 원의 소규모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제작 영화사 배)은 이지원 감독의 사회 단면 목격담이 일종의 모티브가 됐다. 감독이 가슴 깊이 처절하게 느낀 감각이 영화 곳곳에 살아 숨쉬게 된 격이다.

실제로 영화는 한국사회의 어둔 사각지대, 아동 학대 사안을 화두에 올렸다. 스스로를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는 누구도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았던 약하고 비참했던 유년기를 거쳤다. 그리고 그런 상아와 비슷한 처지로서, 부모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는 김지은(김시아)은 약자의 민낯이자 아무도 손닿지 않는 위험공간의 최전선에 자리하는 인물이다.

지난 23일 오후 8시 55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MC 김혜수, 유연석이 진행한 ‘제39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진행된 가운데, ‘미쓰백’의 배우진과 감독들이 함께 자리하며 영예를 나눴다. 이날 한지민이 ‘미쓰백’의 대표격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는 영화적 메시지는 물론 여성 약자들과 세상의 모든 소외계층에게 바치는 숙연한 헌정이었을 것이다.

극중 권소현은 한지민의 수상소감에 눈시울을 붉히며 영화의 처연한 감정을 상기하는 듯했다. 그는 저 또한 평범한 여자로서 누군가에게 억압이나 차별 받으며 살아왔기에, 또 다시 약한 개체를 학대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여자 주미경 역으로 열연했다.

수 년 전 권소현은 여성의 비참한 삶을 조명한 영화 ‘마돈나’에서 어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열연하며 영화계의 감수성 풍부한 재원으로 떠올랐다. ‘미쓰백’의 감성 결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권소현은 주미경의 피가학적인 감정에 몰입해 관객들에게 치 떨리는 파토스(전율)를 선사했다.

‘미쓰백’은 명백히 2018년의 아픔을 클로즈업한 소묘화이자, 핍진한 현실을 비추는 산산조각의 거울일까. 권소현을 비롯한 극중 여배우들은 이 시대 여성이 겪는 남루한 삶의 단면을 제대로 표상화한 직업적 공이 있다.

시대는 시나브로 변화한다. 페미니즘이 성행하는 가운데 숨어 있던 여성들마저 자신의 뚜렷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이 ‘미쓰백’의 처연한 가해자 권소현을 유의미하게 각인할 것은 분명하다. 그의 연기에는 험난했던 과거를 지나 현재와 미래를 한층 사람답게 살고 싶은, 뭇 여성들의 울분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어깨를 마주해 연대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염원. 권소현이 ‘미쓰백’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밀도 있게 쏟아낸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