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재도약. 심기일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국제)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해 이용관 이사장이 귀환하면서 새 출발을 알린 부국제는 과연 옛 명성을 되찾았을까. 제23회가 다짐을 의미하는 자리였다면 올해 부국제는 도약과 성장, 그 가능성을 성과로 증명해야 했다.

절반의 전환점을 돈 부국제는 절반은 아쉬움으로, 절반은 희망으로 채워지는 분위기다. 돌연 태풍이 몰렸다 화창해진 부산의 변덕스런 날씨 같았다.

해운대는 그대로, 낭만+열기는 실종

명성을 얻는데 수십 년의 세월을 소요한 부국제에 위기가 찾아온 건 순식간이었다. 스타와 거장들이 부국제의 변화에 반색를 표하며 부산을 찾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객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소통과 화합이라는 올해의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 영화제 기간, 지나만 가도 스타들의 얼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포장마차의 낭만이 사라진 게 한 눈에 보였다. 밤새도록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영화인들의 모습도 적었다. 스케줄을 뒤로 하고 해운대가 1순위던 스타들의 ‘부산스러움’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제 내 피크 타임인 토, 일요일 주말에도 우동 해운대와 센텀시티는 비교적 한산했다.

부국제는 2014년 세월호를 다룬 영화 '다이빙 벨' 상영을 강행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 ‘다이빙벨’ 상영을 반대하면서 영화인들의 보이콧 릴레이가 이어졌다. 정권 교체 후에는 새 바람을 맞은 분위기다. 부국제 조직위원회는 김동호 전 이사장 등 새로운 인물들을 꾸려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다.

줄어든 레드카펫 스타, 관객들 발걸음 뚝

그러나 한 번 식은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려면 전 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법이다. 과거 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홍보를 위해 다국적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예산 부족 탓일까. 올해 개막식 레드카펫에 선 스타는 예년 보다 숫자가 줄었다. ‘한국영화의 오늘’에 초청된 개봉작이 줄어든 탓이기도 하지만 결국 예산의 문제다. 티모시 샬라메가 부산을 찾아 허전한 해운대를 달래줬지만, 다양성을 채우기엔 부족했다.

올해 가장 큰 화제작이었던 ‘기생충’ 팀도 완전체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중요한 미국 일정으로 봉준호 감독이 부재한 것이지만 남은 배우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인 부국제를 찾아 황금종려상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았을 일이다. 불과 5년 전에도 부국제는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들이 홍보를 위해 반드시 거처야 할 성지로 꼽혔지만 올해도 지난 해처럼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부국제 초청이라면 한 걸음에 달려오던 중화권 스타도 거의 없었다. 위상과 이슈성이 전과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폐막까지 5일 여가 남았지만 공백은 이처럼 컸다.

해운대만의 정취가 사라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 올해 부국제는 지난 해까지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진행했던 오픈 토크와 야외 무대인사 일정을 일괄 영화의 전당에으로 이관했다. 해운대가 아닌 센텀시티 시대를 열고자 한 것이다. 마블, 방탄소년단 등 별도의 이벤트를 마련했지만 부국제의 트레이트 마크인 ‘스타가 있는 해운대’의 정취를 볼 수 없었다.

부국제 위로한 거장, 빛난 여배우들

아쉬움을 달랜 건 박찬욱 감독과 세계적 거장이 된 부국제의 든든한 지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내한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부산을 찾은 감독 중 관객들과 가장 많은 소통을 시도한 감독이다. 개봉 16주년을 맞은 ‘올드보이’ GV에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관객들이 몰려 박찬욱 감독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강경화 정책에도 내한한 히로카즈 감독는 특별한 존재다. 그는 “부국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개최가 힘들 정도로 힘들어할 때 많은 감독들이 목소리를 냈다. 나도 그 지지했던 사람들 중 하나”라며 “정치적 위기가 왔을 때 영화인들이 연대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 바로 부국제”라며 진통을 겪은 부국제와 한국 영화인들을 향한 뜻 깊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 부국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세대를 막론한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다. 김지미부터 전도연, 조여정, 이하늬, 윤아까지 남성 배우들 보다 더 많은 활약상을 보여줬다. 특히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김지미와 ‘칸의 여왕’ 전도연의 만남이 눈길을 끌었다. 비프광장에서 전도연을 만난 김지미는 "후배한테 부탁하는 말인데 나는 아직도 배우로 존재하고 싶다. 그런데 써주지 않는다“라며 ”내가 못 했던 꿈을 계속 이어 받아서 훌륭한 연기자가 되고 영화계 몸 바쳐서 좋은 연기자가 되도록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후배를 애정하는 마음이자 현실을 우려하는 원로배우의 마음이 여성 영화인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도연의 뒤를 잇는 세대인 조여정, 이하늬, 천우희는 이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다. 힘 없이 옛 명성을 찾으려는 부국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은 아이러니함이 느껴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넷플릭스→TV드라마, 넓어진 부국제의 품

올해 부국제의 가장 큰 변화는 TV드라마로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TV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아시아콘텐츠어워즈를 올해 첫 신설, 영화 콘텐츠에 한정된 아시아필름마켓에 방송 영역을 추가했다. 부국제는 이를 홍보하게 위해 올해 ‘제1회 아시아콘텐츠어워즈’를 개최, 다양한 시상 부문을 개설했다.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 엄격한 유수의 영화제와 달리 넷플릭스 상영작을 4편이나 상영한 것도 눈에 띄는 특징. 넷플릭스 화제작 '더 킹, 헨리 5세'의 티모시 샬라메는 올해 부국제를 찾은 영화인 중 가장 이슈를 모은 스타다. 해운대부터 통닭 가게 방문까지 시민들의 목격담이 쏟아졌다. 이슈성이 떨어진 부국제의 공백을 채운 건 티모시 샬라메였다.

부국제 부활, 결국 영화인들 초심+연대에

다양한 시도와 재정비에도 불구, 확실히 부국제의 위상은 전과 다르다. 비단 국내의 정치적문제, 집안 싸움에만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사드 배치 문제, 일본에 한한령 등 아시아 내 입지가 중요한 부국제에게 최근 벌어진 대내외적인 상황은 분위기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답은 아주 단순한 것에 있다. 부국제의 힘은 '정치적 압력에도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 영화인들의 의지에 있다'는 히로카즈 감독의 말처럼 결국 영화인들에게 부국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국내 영화인들이 더 긴밀하게 연대하고 집중할 때 부국제는 다시 옛 전성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국제의 부활은 부산시와 일부 조직위원들에게 있지 않다. 초심으로 뭉친 영화인들의 연대와 콘텐츠를 향한 순수한 집중이 관객들의 관심을 다시 돌리는 방법이다.

[부산=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