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2017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간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현실을 연대의 힘으로 무너뜨린 경우다. 피해를 입어도 그 사실을 고발하여 벌할 수 없었던 개인들이 모여, 폭력을 행한 가해자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허락된 기형적인 사회에 대항하여 얻어낸 승리라 할까.

‘미투 운동’이 한 일은 별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당한 피해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밝혔을 뿐으로 처음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몹쓸 짓을 당해도 그가 지닌 막대한 권력으로 인해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힘을 모아 고발하니,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가능한 것이 되더라. 아니, 하나 둘 모인 물줄기가 바위를 뚫었다 하는 게 옳겠다.

그리고 이 물줄기는 곧,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파렴치한 권력들을 향한다.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폭력을, 수많은 고백들의 힘을 입어 고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사회가 잘못 가르친 수치심을 가지고 그저 힘이 없어 당한 자신이 잘못이라고 여겨온 이들이, 죄책감도 수치심도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들의 것이라는 선포된 진실의 목소리들에 의해 부조리한 현실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게 되면서 만들어진 전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하는 일, 사실 용기를 낼 필요도 없는 너무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당연한 이치처럼 되어버린 세계에서 힘으로 벌어진 범죄가 용인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누군가가 내뱉는 용기 어린 고백이, 진실이 담긴 폭로가 더없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올바른 방향을 취한 힘은 사람들을 모으는 장기가 있어, 힘의 논리에 의해 왜곡된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강력함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때 이 일이 생긴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참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가수 장재인 또한 11년 전에 폭력을 당한 사실을 고백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피해자가 격을 수밖에 없는 깊고 무거운 고통을 재인식하게 했다. 고통은 다른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기형적으로 덧입혀지는 죄책감과 수치심, 그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공개해야 했는지 모른다. 피해를 당했음에도 고개를 숙인 채 살아야 했던 수많은 동일한 고통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진실을 건네기 위하여.

과거의 상처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유명인일수록 더더욱. 그럼에도 장재인이 연대에 힘을 보탤 수 있었던 바는, 우선 그것이 끔찍한 과거를 벗어나 온전한 자신을 찾는 마침표와 같은 과정이기도 하고, 그녀가 동일한 일을 겪은 가수의 무대를 보고 들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처럼 비슷한 비극을 당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그러한 힘이 되어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하는 일조차 힘겨웠던 시대가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힘이 없어 고통을 당한 약자로서 여겨지던 피해자가 이제, 자신에게 불합리한 피해를 입힌 상대를 당당히 고발하여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힘 있는 주체로서 한 발 더 나아가게 된 것. 수많은 유명인들과 힘이 주어진 자리에 놓인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연대를 이끌어낸 결과가 아닐까. 덕분에 우리는 힘의 논리에 현혹되어 당연한 것인 줄 몰랐던,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장재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