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의도적으로 예민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우리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타의에 의해 잃어버려야 했고, 실제로 적지 않은 부분이 소실되거나 누락되었으며 심한 경우엔 왜곡까지 되어 있어 날이란 날을 잔뜩 세운 채 되찾는 작업을 벌여도 모자를 판이다. 그렇지 않아서 발생한 논란에, 이해의 여지를 보일 수 없는 까닭이다.

KBS에서 설 특집으로 마련한 ‘조선팝 어게인’에서 공들여 만든 무대 하나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날치’의 신곡 ‘여보나리’를 위해 제작된 것이었는데, ‘여보나리’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에서 못다한 별주부의 이야기를 ‘이날치’ 특유의 감각으로 풀어낸 노래다. 그리하여 무대 배경으로 용궁의 이미지가 사용되었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필 용궁의 이미지라며 보여준 건축물의 모습이 일본 성(城) 특유의 양식인 ‘천수각(天守閣)’을 닮아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상상해서 만들어내었다 해도 우리 고유의 음악과 맥락을 같이 하는 곡을 위한 이미지로는 더없이 부적격했으니, 왜색(倭色)이란 말이 나올 만치 논란이 되리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오히려 고려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다 할까.

게다가 해당 무대에 선 밴드에게도 더없을 민폐고. 즉, 여러 정황상 ‘보통의 상식’을 지닌 이들이라면 알고 사용하진 않았을 게 분명하여, ‘인지’하지 못해서 일어난 불찰이라는 제작진의 해명이 틀린 말은 아니겠다.그러나 진짜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존재한다. 이 ‘보통의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조금만 공을 들였어도 ‘인지’하지 못하여 불찰을 일으킬 일은 없을 사안이었다는 점이다.

“논란이 제기된 후 확인한 결과 이미지 데이터에는 ‘황궁’이라는 표현이 설명 캡션으로 남아 있는 것을 뒤늦게 파악하게 됐습니다.” 제작진의 실수일 뿐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입장이 반영된 사과문에도 사람들의 비난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자, 재차 내놓았던 해명 중 일부다. 한 마디로 사전에 거쳐야 할 확인 작업에 부주의 했다는 이야기로 인지할 틈이 없었을 게 당연했다.

물론 영상 제작을 담당한 외부 제작처가 자료 수집의 단계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잘못이 있다만, 방송의 콘셉트와 방향을 정하고 이를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쪽은 제작진이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위배되진 않는지 관련한 모든 작업을 컨트롤할 소임이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오랜 것들을 다루었다면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세심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취해야 했는데 인식이 부족하다 여겨질 정도로 둔하게 굴어버렸다.

‘조선팝 어게인’뿐 아니라, ‘불후의 명곡’과 ‘국악 동요 부르기 한 마당’에서도 사용되었다 하니 말 다한 셈 아닌가. 혹여 인식이 부족하여 인지하지 못한 거라면 이번 일을 계기로 제대로 채워 넣길 바라고, 단순한 부주의라면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이들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감과 의무를 온전히 체감하고 깨달아 다시는 유사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KBS 2TV '조선팝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