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내게도 이런 선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상(異常)'한 수학자가 아닌 '이상(理想)'적인 수학자의 가르침으로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9일 개봉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제작 조이래빗)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나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입시만을 최우선시하는 한국 교육 제도의 문제점은 예전부터 줄곧 거론돼왔다. 학생들의 상상력과 자율성을 완전히 배제한 주입식 및 학원식 교육,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이 당연시 여겨지는 것 등이 비판받아왔던 것.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결국 좋은 결과를 낳으니 학부모와 학생 입장에선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길로 갈 이유가 없었다. 구태의연한 교육법이 수십여 년간 바뀌지 않던 이유였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이런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들춰내고 비판한다. 지금껏 와 온 길은 틀렸으니 이제라도 "계산이 아닌 생각을 하라"라고 말한다. 영재들이 모여있다는 자사고가 대표적 예다. 대한민국 1%가 모여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그저 값비싼 교육으로 완성된 문제 푸는 기계에 불과하다. 답이 왜 이렇게 나올까를 연구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한 문제를 더 빨리 풀 수 있을까에 급급하고, 수업보단 선생이 전하는 시험 힌트에만 온 관심이 가 있다.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학교 시스템도 별다를 건 없다. 이를테면 수학 선생이자 한지우의 담임 김근호(박병은)는 "질문 없니?"라고 물으면서도 막상 학생이 문제에 의문을 표하자 "중요한 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거다. 네가 말하는 건 출제자의 의도에 없었다"고 칼같이 답한다. 뿐만 아니라 선생으로서의 본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선생으로서 수학 성적이 다른 학생보다 떨어지는 한지우를 끌고 가기보단 "다른 학교로 가는 건 어떠니"라며 전학을 회유한다.

마치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도 가슴 한편이 쓰라린 이유는 우리 역시 이러한 교육이 낳은 피해자이자 피의자이기 때문일 테다.


반면 이학성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만한 이상(理想)적인 수학자이자 멘토다. 수많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를 낳은 수학이 왜 '아름다운 과목'인지 소개해 주는가 하면, "답을 맞히는 것보다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며 수학을 통해 삶의 올바른 방향을 알려준다. 그의 가르침이 주는 울림은 그동안 잊고 있던 열정마저 깨울 정도다.

그리고 최민식은 이런 이학성을 무게감 있게 완성했다. 그가 아닌 이학성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극 초반 야성미 넘치는 모습부터 중후반부 멘토로서의 인자한 미소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심지어 대사는 동화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상적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오글거릴 수도 있으나 최민식은 이조차 묵직하게 내뱉으며 설득력을 채워 넣는다.

그와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가장 많은 신을 함께한 김동휘는 최민식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박보람 역의 조윤서와 안기철 역의 박해준은 두 주인공의 믿음직한 동반자로서 작품에 유쾌함을 더한다.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는 달리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다소 단순하다는 점. 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와 울림만큼은 묵직하고 뚜렷하다. 오랜만에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가 등장했다는 점 역시 반갑다. 혼자 봐도, 누구와 봐도 느끼는 바가 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