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첩보물이라고 하기엔 긴장감을 자아낼 요소가 다 빠져있고 액션 무비라 하기엔 어딘가 엉성하다. 원작과 다른 길을 가려다 이도저도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이해영 감독이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제작 더 램프)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 용의자들이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억울한 오해를 받는 용의자들 사이에 숨은 유령은 기필코 살아나가 동지들을 구하고 총독 암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모두를 속이는 작전을 실시한다.

'유령'은 중국 마이자 작가의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한다. 해당 작품은 이미 한차례 현지에서 '바람의 소리: 유령'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원작이 갖고 있는 첩보 스릴러의 결을 그대로 살린 '바람의 소리: 유령'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유령의 정체를 계속해 의심하게 만들며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해 호평받았다.

이해영 감독의 경우 다른 길을 택했다. 기자간담회 당시 "유령이 누구인가를 고민하기보단 유령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길 원했다"고 말한 것처럼 유령의 정체를 숨기기 보단 유령의 정체를 앞에서 공개하는 것으로 막을 연 것. 이에 따라 영화 중반부까진 원작과 비슷한 전개가 펼쳐지지만 후반부엔 전혀 다른 구성이 완성된다.


그러나 결론만 말하자면 이 선택은 악수가 됐다. 일단 원작이 가진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은 끝까지 유령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반전과 아슬아슬한 위기가 만들어내는 쫀득한 긴장감이었다. 허나 '유령'의 경우 유령의 정체를 초반부터 밝히다 보니 원작의 색이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첩보·추리물의 목적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비틀어낸 서사가 참신하지도 않다. 특히 일제강점기 속 젊은 독립 투사들의 역사를 영화와 엮는 방식이 '암살'에서 본 것과 흡사해 기시감마저 든다.

원작과 달라진 캐릭터 설정도 문제다. 무게감을 낮추기 위해 캐릭터들을 대체적으로 가볍게 그려냈는데 이 때문에 인물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매력들까지 사라졌다. 개연성도 아쉽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유령이 가장 개연성 없게 그려졌다. 분명 스파이인데 임무 성공과 기밀 유지를 최우선으로 여기기보단 동료의 죽음을 더 중요시 생각하는 감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 탓에 영화 속에선 일본 수뇌부를 확실히 죽일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야 할 주인공이 러닝타임 내내 항일조직 흑색단이 특별히 선별한 스파이라고 하기엔 엉성한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원작과 다른 길을 가려 했지만 원작의 색을 빼도 너무 뺐다. 결과적으론 원작의 매력만 빠진 어정쩡한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차라리 원작의 결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절반 정도의 성공은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유령'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