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SF의 탈을 쓴 멜로, 사유하게 만드는 힘 [OTT 리뷰]
2023. 01.20(금) 10:00
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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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를 구축해 온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SF 장르에 도전했다. SF 장르를 멜로로 풀어내고, 다양한 물음들을 던지며 ‘연니버스’의 새로운 축을 구축했다.

20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는 급격한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내전이 수십 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쉘터. 크로노이드 연구소는 지난한 내전을 끝내기 위해 40년 전 전투에서 부상당해 식물인간 상태인 전쟁 영웅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서 AI 용병을 만든다. 이에 정이의 딸 윤서현(故 강수연)은 한때 전쟁 영웅이었지만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된 엄마 정이의 명예 회복을 위해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AI로 복원된 정이는 마지막 전투 상황을 그대로 복원한 시뮬레이션 실험에서 매번 탈출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실험은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윤서현은 어떻게든 A.I. 용병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려고 하지만, 크로노이드 연구소 내부 상황은 급변한다.

이번 작품은 영화 ‘부산행’ ‘반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등의 작품을 통해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의 첫 SF 영화다. 매번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줬던 연상호 감독이 만든 SF에 대한 기대감이 쏠린 것은 당연지사.

완성된 작품은 기존 SF 작품과는 결을 달리 한다. 일반적으로 비주얼과 스케일로 승부하는 여타 SF 장르의 작품과는 달리 ‘정이’는 캐릭터 간의 감정과 철학적인 질문들에 더 집중한 모양새다. 즉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SF 장르를 이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중요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되고, 여기에 내전 장기화의 이유라는 오명을 쓰게 된 엄마의 명예를 회복 시키기 위해 AI 개발에 맹목적인 윤서현과 AI로 복원돼 비인간적인 실험의 도구로 전락한 정이, 반전을 품고 있는 인물이자 크로노이드 연구소장 상훈 등 다양한 인물들 간의 감정에 집중한 이야기 전개로 사실상 영화는 SF 보다는 멜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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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현이 ‘정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는 이유와 전쟁의 아이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죽음마저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정이의 서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며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다.

물론 정이가 용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윤서현의 시한부 설정 등 다소 신파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각 인물의 감정 서사에 몰입하면 이는 어느 정도 상쇄되는 부분이다.

또한 인간과 AI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나아가 인간성에 대한 메시지까지 담아냈다. 연상호 감독은 인간성을 잃은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를 통해 “안간성이란 인간만의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더불어 정이와 윤서현을 통해 모녀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관객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SF 장르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사이버 펑크 무드로 완성된 연상호 감독표 ‘정이’의 디스토피아는 비주얼적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여기에 최첨단 기술이 삶의 질을 높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계급과 부로 누군가는 권력과 영생을, 누군가는 인간 존엄성마저 위협받는 아이러니가 만연한 SF 세계관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연상호 감독표 SF의 원동력이 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특히 故 강수연은 묵직한 카리스마와 단단한 존재감, 절제된 연기를 통해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윤서현 역에 故 강수연을 떠올리자 ‘정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연상호 감독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유다.

‘지옥’에 이어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한 정이 역의 김현주의 활약도 놀랍다. 액션은 물론, AI와 인간을 넘나드는 디테일한 연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또한 상훈 역의 류경수도 극 중후반부 반전을 이끌며 제 몫을 완벽히 해냈다.

이처럼 SF지만 멜로에 가까운 ‘정이’는 다양한 물음들을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사유에 잠기게 만든다. 깊은 여운으로 마무리되는 엔딩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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