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한국 영화의 맛 ‘거미집’이다.

27일 개봉된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원하는 결말을 위해 이미 촬영이 끝난 영화를 재촬영하겠다는 김열 감독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재촬영에 임하는 배우, 스태프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소동극처럼 펼쳐진다. 이 소동극을 이끌어 가는 건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다.

수십 번씩 번뇌하면서 영화 결말에 집착하는 김열 감독, 김열 감독 보다 더 새 영화 결말에 광기 이상의 집착을 보이는 신미도(전여빈), 아내가 있으면서도 한유림(정수정)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톱스타 호세(오정세), 드라마 촬영을 가야 한다며 촬영 내내 까탈스럽게 구는 한유림 등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들이 한 흐름 안에서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무엇인지 러닝타임 내내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거미집’은 배우 앙상블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배우 앙상블 속에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코미디도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또한 극 중 영화인 ‘거미집’이 흑백으로 중간중간 삽입돼 마치 두 개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흑백영화는 김열 감독이 무리하게 재촬영을 할 정도로 집착한 새로운 결말이 만드는 과정에 이입할 수밖에 없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동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김지운 감독의 장기가 폭발한다. 흑백영화 ‘거미집’과 ‘거미집’을 재촬영하는 과정이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스릴러와 치정, 멜로, 괴기물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된다. 얼핏 활자만 놓고 보면 번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김지운 감독은 그동안의 노하우로 이 많은 장르를 한 작품 안에 유려하게 펼쳐놓으며 각 장르의 맛을 제대로 살려냈다. 시시각각 장르가 변하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거미집’은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의 변주, 배우들의 앙상블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과 송강호를 필두로 한 배우들의 호연, 디테일이 살아있는 프로덕션까지 삼박자가 높은 완성도로 조화를 이루니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도 짧게 느껴질 정도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거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