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동산' 사이먼 스톤의 영민한 재해석, 전도연의 반가운 컴백 [리뷰]
2024. 06.09(일) 13:45
벚꽃동산
벚꽃동산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27년 만에 연극신에 돌아온 전도연이 반갑다. 그는 눈을 뗄 수 없는 연기력과 딕션으로 15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지루할 틈 없이 꽉 채워 넣는다.

최근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개막한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은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재창작한 공연으로, 그간 연극 '메디아' '예르마' 등의 작품을 통해 남다른 재해석 능력을 보여준 사이먼 스톤이 연출을 맡았다.

사이먼 스톤은 원작 속 몰락을 앞둔 러시아 가문의 설정을 우리나라에 맞춰 파산 위기를 눈앞에 둔 한국 재벌가의 이야기로 새롭게 해석, 처음 '벚꽃동산'을 접하더라도 어렵지 않고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게끔 했다. 극 중심에 있는 몰락하는 가문의 이야기와 벚꽃 동산의 설정 등을 제외하곤 모든 걸 싹 뜯어고친 수준이다. 덕분에 이번 '벚꽃동산'은 무려 120년 전에 쓰인 희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꽤나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위기가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이를 알아채긴커녕, 황두식(박해수)의 주의에도 "잘 해결될 거다. 우린 지금껏 그래왔다"라며 순진무구한 태도로 일관하는 재벌가의 모습이나, 재벌가 자제로서 마음 편히 유학을 하는 등 모든 혜택을 다 받아놓고도 빈부의 불합리함을 꼬집거나 모든 결과물을 자신의 노력이라 일컫는 등 모순 가득한 말을 내뱉는 자의식 과잉의 딸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벚꽃동산'에 잘 녹여내며 자연스러운 몰입을 이끈다.

자칫하면 무겁기만 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개그적 요소들과 송재영(손상규), 유병훈(김영호), 이세준(신예빈) 등 주변 캐릭터들의 위트 있는 대사들이 무게감을 덜어준다. 마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 유쾌하면서도 마냥 웃을 수 없는 현실감 가득한 대사들이 작품을 채워 넣으며 팽팽한 텐션을 끝까지 끌고 간다.

무대 디자인을 비롯해 음향과 조명 역시 칭찬할만하다. 무대를 가득 채운 삼각형 형테의 집은 때론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주기도, 때론 또 하나의 캐릭터처럼 활약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더불어 음향과 조명은 적재적소에 활용되며 다소 산만하게 흩뿌려져 있는 대화를 집중시키고 정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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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을 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단연 전도연의 존재감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 신에 돌아온 전도연은 감당하기 힘든 큰 슬픔을 가슴에 묻고 술과 남자에 취해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송도영을 본인만의 매력으로 완벽히 연기해낸다. 아무 남자에게나 플러팅을 하고, 심지어 딸의 연인에게도 키스를 하는 모습까지 보이지만 그의 순수하고도 러블리한 면모 탓에 쉽사리 비난의 손가락질을 할 수 없게 된다.

박해수 역시 연극배우 출신 다운 연기력과 발성으로 극을 묵직하게 이끌어간다. 박해수가 연기한 황두식은 강현숙(최희서)과 함께 극 중 유일하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로, 대척점에 있는 송도영과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데 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며 극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게끔 한다.

한편 '벚꽃동산'의 배우들은 7월 7일까지 30회의 공연 기간 동안 '원 캐스트'로 관객들을 만난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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