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호소력 짙은 연기는 깊은 고뇌로부터 나온다.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관객들을 압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 누아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배우 소지섭의 이야기다.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연출 최성은)은 조직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광장 세계'를 떠났던 주인공 기준(소지섭)이 조직의 이인자였던 동생 기석(이준혁)의 죽음으로 11년 만에 돌아와 복수를 펼치는 누아르 액션 작품이다. 소지섭은 극 중 기준을 연기했다.

평소 액션 누아르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소지섭에게 '광장'의 시나리오는 심장을 뛰게 만든 설렘이었다. 소지섭은 "누아르는 내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나이가 들어도 계속하고 싶은 장르였고 액션은 눈빛이나 몸을 쓰는 연기를 선호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번 캐스팅에서 내가 1순위라는 말을 듣고 정말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개봉된 영화 '회사원'에서 강력한 액션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그는 전작과 비교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소지섭은 "비교 대상이 있다는 건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작품들이 나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일이다. 그 부담까지도 감사히 여기면서 이겨내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원작의 큰 인기로 각색될 작품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시선도 있었지만 소지섭은 드라마 '광장' 또한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난 '광장'의 원작이 있는지 몰랐던 상태로 시나리오를 먼저 봤다. 각색된 내용을 먼저 접했는데도 재밌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큰 그림 자체는 원작과 비슷한 구도를 띄고 있으며 그 속에서 기준의 감정선도 잘 표현돼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대본에 충실하려고 했으며 원작의 극 중 인물인 기준을 닮아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라고 전했다.

소지섭

그렇게 소지섭은 배신감과 애통함을 모두 느끼는 기준이라는 인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외적인 부분부터 주인공의 깊은 정서까지 연구하며 그만의 기준을 만들어냈다. 소지섭은 "기준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나서는 인물이다. 내 연기를 통해 주인공의 처절한 심정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었다. 단순한 보복을 넘어 복수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몸도 야위고 눈빛도 깊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기준의 감정선이 깊어질수록 소지섭의 몸과 마음가짐도 변했다. 소지섭은 "작품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내 몸무게는 95kg였지만 마지막에는 70kg대였다. 밥 먹는 칼로리를 제한하며 닭가슴살과 밥만 먹었던 것 같다. 운동도 계속했다. 기준이라는 인물이 좀 불쌍하게 보였으면 했다. 기준의 눈빛과 행동을 전부 다 따라 할 순 없겠지만 그의 분위기를 가져가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라고 짚었다.

소지섭은 "기준이라는 인물이 극 중 준모(공명)를 죽이고 나서 죽음을 각오하고 더 큰 슬픔에 빠진다. 아마 본인이 죽어야 모든 것들이 끝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 기준의 선택이 복수를 위해 달려가며 다 죽이는 게 목표라기보다는 본인의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 된다. 대사에서도 '곧 보자'라는 말이 언젠가 먼저 간 동료들이나 동생에게 곧 보자라는 의미로 쓴 거다"라고 전했다.

결말까지 액션 신으로 가득 찬 '광장'을 이끌기 위해 소지섭은 인물의 끈질긴 면모를 중점으로 두고 연기를 펼쳤다. 그는 "원작과 다른 부분으로 표현됐을 수 있겠지만 기준이라는 인물이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멈출 순 있지만 뒤로 물러서진 말자, 또 격투를 하며 밀려날 순 있지만 뒤로 피하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복수를 위해 집요하게 달려온 기준에게 응징을 당한 상대는 꼭 많이 아파 보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유독 대사가 없었던 '광장'은 서사의 부족이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소지섭은 "아무래도 대사가 없다 보면 정보 전달이 힘들기 마련이다. 마지막에 편집본을 봤을 땐 생각보다 설명이 더 축소되고 전개가 더 빨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면서도 "'광장'이라는 드라마는 주제가 굉장히 쉽지 않나. 감독님의 지도에 따라서 잘 합을 맞추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대사가 없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게 더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복수라는 주제만을 다루고 있기에 단조롭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해서 오히려 글로벌 시청자에게 다가가기 쉬울 수 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나. 그러다 보니 더 간략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광장'이라는 시리즈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많이 보여준 것 같다. 여기에서 어떤 부분을 더 부각한다거나 감정의 기복을 넣는다고 해서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소지섭

온 마음을 다해 작품을 마친 소지섭은 본인의 과거 작품들을 감상하며 또다시 추동력을 얻는다.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큰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휴식기는 꼭 필요하다. 그 기간 중에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내 과거 작품들을 다시 보며 에너지를 얻는다. 20대 초반 시절 출연했던 작품들을 보면 그때의 열정이 느껴져서 좋더라"라고 전했다.

30년의 연기 생활을 이어온 소지섭은 더 좋은 배우가 되고자 끊임없이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고 있다. 그는 "한 10년 정도 배우 생활을 하면 전문가가 돼서 연기를 쉽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30년을 해도 모르겠다. 나이가 더 들어도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그 고민을 계속하고 배우면서 나아가고 싶다"라면서도 "40대가 된 이후 액션연기를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고 생각보다 몸이 따라와 주는 반응이 느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처럼 일체가 되는 듯한 느낌은 아니더라. 그렇지만 아직까지 몸 쓰는 건 괜찮은 것 같고 재밌다고 생각한다. 70대 까진 액션연기를 계속해보고 싶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차기작과 관련해 작품들을 보고 있지만 새로운 것을 해야 할지, 잘하는 것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 시청자분들이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젠 하기 어려울 것 같고 한다면 멜로 정도가 아닐까"라고 밝혔다.

소지섭은 연기 활동 외에도 독립영화 수입배급사 '찬란'의 투자자로서 활동하며 영화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영화 쪽에 도움을 주기 시작한 건 한 10년이 넘은 것 같다.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의미로 영화 제작·수입 활동에 투자하게 됐다. 실제로 내 이름이 극장에 걸리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더라. 내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능력이 된다면 이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솔직히 요즘 영화계가 정말 어렵다. 영화가 계속 나오고 만들어져야 하는데 상황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더라. 다들 힘들어하시니까 가슴이 아프다"라고 털어놨다.

영화 '서브스턴스' '유전' 등을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소지섭. 그는 작품 수입과 투자로 적자를 보고 있지만 종종 빛을 보는 작품을 발굴하면 뿌듯함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소지섭은 "나는 내가 업으로 삼는 내 일과 관련된 부분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 다른 분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듯 나 또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