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중국 영화계의 거장 감독, 지아장커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1995년 데뷔, 올해로 22년째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아장커 감독은 올해 두 편의 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였다는 이유로 인연이 닿은 중국 한동 감독의 신작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의 프로듀서로서, 또한 신작 영화 '사라진 시간들'의 감독으로서 영화제에 참석한 것.

지난 1998년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래 꾸준히 영화제를 향한 지지와 성원을 보냈던 '단골손님' 지아장커 감독은 최근 몇 년 간 부산국제영화제가 겪어온 부침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과거 부산에는 활기가 있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기에 다양한 영화들이 등장해 풍성한 영화제를 만들 수 있었다"며 다시 한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올해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된 '사라진 시간들'은 브릭스(BRICS) 5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브릭스는 1990년대 말부터 빠른 성장을 보인 신흥경제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경제 용어로, '사라진 시간들'은 브라질의 월터 살레스 감독, 러시아의 알렉세이 페도르첸코. 인도의 마두르 반다카르 감독, 중국의 지아장커 감독, 남아공 자밀 X.T. 쿠베카 감독이 각각 '시간'이라는 주제를 놓고 만든 다섯 편의 단편 영화를 한데 묶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브릭스 홍보용 영화라고 일컫지만, 지아장커 감독은 "이 영화가 광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 전체의 인구가 70억이라고 하는데, 브릭스 5개국의 인구 수만 30억이 넘는다"며 "이 많은 인구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들의 생활에서 벌어질 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주제로 다루고 싶었다.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사라진 시간들'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영화 속에는 여러 정치, 경제적 문제들이 녹아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영화를 통해 녹여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풀어내고 싶었다"는 소회도 전했다.

미디어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형식의 옴니버스 영화가 등장하고 있지만, 이처럼 국경과 대륙을 초월한 대규모 합작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사라진 시간들'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특히 2015년 11월 벌어진 브라질 광산댐 붕괴를 주제로 한 영화 'When the earth trembles(웬 더 얼스 트렘블)'을 연출한 윌터 살레스 감독의 경우에는 지아장커 감독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를 연출한 이력도 있어 이들의 조우에 더욱 많은 관심이 모였다. 지아장커 감독은 "네 감독과는 해외 영화제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내가 먼저 합작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지난해 이미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이어서 빠르게 작업이 진행됐다"며 감독들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사라진 시간들'에서 지아장커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의 소제목은 'Revive(리바이브)'다. '소생'이라는 뜻으로, 지난 2015년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35년 만에 폐지된 사건과 관련해 최근 중국 사회의 변화를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단편적으로 담아낸 이야기다.

영화는 지아장커 감독의 고향인 중국 산시성 중부의 작은 현, 평요를 배경으로 유적지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펼치는 중년 부부의 삶을 들여다본다. 14살 외동딸을 부모님께 맡겨 놓고 맞벌이에 여념이 없는 부부는 한 자녀 정책이 폐지된 후 두 번째 아이를 가져야 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은 아내와, 아이를 낳았을 때 들어갈 추가 비용을 놓고 고려한 끝에 이를 반대하는 남편의 현실적인 다툼이 이어진다.


중국의 신세대 거장 감독들이 불리는 일명 '6세대 감독' 중에서도, 지아장커 감독은 유독 중국이 맞닥뜨린 현대의 문제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왔다. 급격한 자본화를 겪고 있는 산시성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 영화 '소무'를 시작으로 리얼리티를 극대화 한 '스틸라이프' '천주정', 감독만의 색깔을 담아내 중국의 미래를 예측한 '산하고인'까지 그의 영화들은 일관적인 색채를 띤다. '사라진 시간들' 역시 중국이 당면한 위기, 저출산 문제를 소재로 삼아 기존 그의 작품과 궤를 같이 한다.

지아장커 감독은 "한 자녀 정책이 폐지된 이후 수많은 중국 가정에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를 더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여성의 가임기, 즉 여성의 '시간'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그렇기에 옴니버스 전체 주제인 '시간'과 주제를 연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갓 결혼한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가진 채, 사랑하기에 아이를 가진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일상을 사는 동안 부부간의 감정은 단조롭게 희석됐고,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낯선 사람처럼 여겨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러한 감정의 변화 또한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과거 여러 공식석상에서 '사람, 공간, 시간'을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꼽았던 지아장커 감독. 그는 과거의 삶을 재현하는 배우들을 사람으로 삼고, 2700년이나 된 오랜 유적지를 공간으로 삼아 이들이 당면한 시간을 이야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전통적인 사람과 공간을 영화의 배경으로 둠으로서 관객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련의 과정을 당연시했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