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열정만 많은 줄 알았더니, 그 안에 진심까지 가득했다. 하나를 하더라도 허투루 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하는 것. 그 치열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것이 배우 유준상의 진가였다.

KBS2 '왜그래 풍상씨'(극본 문영남·연출 진형욱) 제작발표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으레 제작발표회라고 하면 배우들이 잘 차려입고 나와 작품에 대한 열띤 홍보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유준상은 달랐다. 카센터 직원 복장에 손톱에는 검은 칠까지. 여러모로 제작발표회에서 봐왔던 배우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하도 강렬한 인상이라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인터뷰 자리가 마련되어서야 그 이유를 유준상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유준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이 역할을 제가 정장을 멋지게 입고 와서 설명할 수 있나 싶었다"면서 "어떤 옷을 입어도 제가 이풍상 역할을 맡은 유준상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더라.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극 중 카센터를 운영하며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산전수전 다 겪는 이풍상과는 전혀 다르게 잘 차려입은 상태에서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단다.

이렇듯 유준상은 '진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나 그랬다. 매 작품마다 그랬지만, '왜그래 풍상씨'의 경우 캐릭터와 자신을 매치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단다. 동생들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으면서, 자신에게는 인색한 풍상 캐릭터에 맞게 극 중에서 입고 나오는 옷 가지 수도 지극히 줄였다.

외관을 완성한 유준상은 문영남 작가와의 대본 연습을 통해 캐릭터에 점차 녹아들었다. 유준상은 "처음에 연습할 때에는 많이 혼나 반성 좀 했다. 그 이후 작가님 만날 때마다 3, 4시간 연습했다. 치열하게 하니까 연습이 실제처럼 되더라"면서 "한 장면에 스무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대사량이 많았는데, 그걸 다 했다"고 말했다.

완벽하게 풍상이가 된 유준상은 그야말로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열연을 펼쳤다. 매번 사고만 치는 동생들 때문에 사과하느라 굽은 허리는 펴질 줄 몰랐고, 아내 간분실(신동미)의 구박에도 동생들과의 끈을 놓지 못했다. 고생만 하던 풍상은 간암 선고를 받고, 간 이식을 받으면 살 수 있지만 동생들의 애꿎은 원망만 들었다. 이러한 풍상이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만 가족은 뒷전인 채 동생들에게 맹목적인 풍상이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시청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유준상은 "저는 풍상이가 이해가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유준상은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완벽한 연기 역시 거기서 비롯됐다. 유준상은 "연습을 통해서 작가님이 이야기 해준 부분을 투영해서 연기를 하게 됐고, 이 때문에 풍상이에 대한 이해가 많이 됐었다"고 했다.

자극적인 소재 때문에 '막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유준상의 생각은 달랐다. 이에 유준상은 "우리 드라마가 욕먹는지 몰랐다. 분명히 우리들의 이야기가 정확히 전달되는 지점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많은 분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다 생겨'라고 말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한 일이 일어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유준상의 말처럼 '왜그래 풍상씨'는 사고만 치던 동생들과 희생하는 자신을 이해하길 강요했던 풍상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화합하면서 '짐인 줄 알았던 가족도 모이면 힘이 된다'는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전했다. 유준상은 "풍상이가 동생들에게 '나 좋자고 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게 우리 드라마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핵심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풍상이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동생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기 때문에 오해를 풀 수 있었단다. 오해가 풀리자 하루도 바람 잘날 없던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오고, 더욱 결속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 풍상의 가족을 보며 자신의 가족을 반추한 사람들도 많았다. 유준상이 만난 시청자들도 그랬다. 유준상은 "촬영장에 많은 분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가시면서 '가족들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 해봤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더라"고 말했다.

"스태프들이 촬영 초반에 이 작품이 저의 인생작이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떻게 내 인생작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지막 회 촬영하면서 그 말이 맞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만큼 '왜그래 풍상씨'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죠."

'왜그래 풍상씨'를 끝낸 유준상은 다시 무대로 돌아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조금은 휴식을 취한 뒤 해도 될 법한데, 유준상은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1분 1초도 헛되게 쓰는 법 없이 알차게 쓰는 것이 유준상만의 휴식 방법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 정도로 유준상의 24시간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유준상의 모습이 열정만 넘쳐서 그런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그래 풍상씨'에 임한 마음가짐과 캐릭터를 대한 태도를 비추어 봤을 때, 유준상의 열정은 진심을 다해 삶을 살아내기 위한 원동력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유준상을 잘못 알고 있었다. 자그마한 것에도 진심을 다하며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유준상의 진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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