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연극배우 이명행에 이어 원로 연출가 이윤택까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이 국내로 번지며 공연계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미투(me too)'는 SNS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고백하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처음 시작돼 성추행, 성폭력 등 성범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도 피해자'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현상을 이른다.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 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케빈 스페이시, 영화감독 브렛 래트너 등 유력 인사들이 연이어 성추문에 휘말리며 문화예술계를 흔든데 이어 정치, 언론, 경제계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산돼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로 넘어온 '미투' 운동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박범신 작가 등을 시작으로 문학계 원로인 고은 시인, 함영준 큐레이터 등 문화계 인사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안태근 전 검사 등 법조계 성범죄 현실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사회 구성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연극계에는 최근 배우 이명행의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며 미투 바람이 불었고, 이명행은 공연 중이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하차하며 자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14일 새벽 극단 미인 대표 김수희 연출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투' 캠페인에 동참했다. 장문의 글을 통해 과거 이윤택 연출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

김수희 대표는 해당 글을 통해 자신이 10여 년 전 연극 '오구' 지방 공연에서 이윤택 연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여관방에서 자신을 1인실로 불러내 안마를 시켰고, 그 과정에서 바지를 벗고 성기를 만지라고 주문했다는 등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졌다.

김수희 대표가 직접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미투' 글 중 언급한 '오구'는 이윤택 연출과 그가 속한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 중 하나다. 또한 이윤택 연출은 논란이 불거진 이후 "반성하고 근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이윤택 연출은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을 오랫동안 역임하며 극단의 수장 역할을 해왔다. 특히 연희단패거리는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로 대표 극단 중 하나이자, 웰메이드 연극을 통해 마니아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아온 극단이기도 하다. 이에 관객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김수희 대표의 폭로 이후 이윤택 연출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추가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연극계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글이 연신 쏟아지는 등 공연계 '미투' 바람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공연계는 국내 여러 문화예술계통 중에서도 유독 폐쇄적인 구조다. 좁은 인맥과 도제식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여러 극단들의 운영 방침 상, 내부고발을 했다가는 당장 공연계에서 배척당해 생업을 잃게 될 위험이 높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지금껏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여러 기형적인 문제에 대해 침묵해야 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과거 혐의에 대한 정확한 해명 없이 말 뿐인 사과만 하며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이명행은 자숙을 선택했으며, 이윤택 연출은 근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대중들에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잠시 활동을 쉬는 것이 아니냐"는 공분을 사고 있다. 피해 당사자를 향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부재한 가운데, 공연계 '미투'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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