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유병재의 야심 찬 프로젝트,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은 40분 짜리 농담에 불과했다.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몰에서 '유병재 두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B의 농담'(이하 'B의 농담')이 공연됐다.

'B의 농담'은 지난해 8월 첫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 '블랙코미디(BLACK COMEDY)'를 선보인 유병재가 두 번째로 기획한 스탠드업 코미디쇼다. 앞서 '블랙코미디'가 유튜브 등 온라인 영상 플랫폼을 통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얻은 데 힘입어, 이번 'B의 농담'은 200석 소극장에서 1300석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웠고, 넷플릭스 공개를 통해 전 세계 스트리밍에도 나섰다.

공연은 유병재가 그간 자신에게 달린 악성 댓글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소위 '불편 박스'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형태로 꾸며졌다. 차분한 말투의 성우가 "YG는 왜 까지 않느냐. 이 기회주의자"라는 식으로 발화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형식으로, 이날 '불편 박스'에는 최근 벌어졌던 케이블TV tvN '나의 아저씨' 논란에 대한 해명,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나는 앞으로 모든 피드백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유병재는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인 척 굴면서 정작 YG 욕은 못한다"는 '불편 박스'의 발화에 "YG는 약국입니다. 기분은 다른 분들이 좋으셨는데 욕은 제가 먹어요"라며 소속사를 제대로 깠다. 또한 조재현 김기덕 등 미투 운동을 통해 고발된 성범죄자에 대한 언급은 물론 홍준표, 전두환 등 특정 정치인을 향한 디스, '한남'과 '메갈'이라는 소재를 끌고 와 양극화된 젠더 혐오에 대한 과감한 토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모두 까기'는 다소 도를 지나쳤다. 부조리한 사회의 현상들을 까는 대신 조롱의 대상에 자신과 대중을 포함시키는 한편, '불편 박스' 속에 담긴 대중들의 의견을 그저 '프로불편러' 취급하며 웃음의 도구로 삼아버린 것.

특히 쇼의 시작 부분 등장한 '나의 아저씨' 리뷰 관련 사과가 그랬다. 유병재는 "이 말을 꼭 해야 오늘 공연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의 첫 사과문이 드라마 리뷰 쓴 것에 대한 사과문일 줄 몰랐다"며 "'나의 아저씨' 리뷰 쓴 것 정말 죄송합니다", "리뷰를 쓴 것을 사과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리뷰 쓴 것을 사과한 것을 사과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계속해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과거 잘못된 행위에 대해 스스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 사과문을 쓴 과거의 자신과 사과문을 읽은 이들을 '모두 까기'하며 조롱한 셈이 됐다.

또한 유병재는 욕설을 지적하는 댓글을 웃음거리로 삼았다. 유병재가 여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인 'X'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불편 박스'에서는 이를 지적하는 성우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방송은 본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질 때도 예외 없이 이어졌다. 유병재는 의도적으로 이 특정 단어를 사용해 계속해 '불편박스'의 음성이 계속해 나오게 했고, 이를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치환하며 가볍게 소비했다. 신랄한 풍자와 비판 대신 애매한 조롱만이 남았다.


'B의 농담'은 예매 시작 1분 만에 3일 공연 전석이 매진됐다. 90분으로 알려졌던 유병재의 코미디쇼는 20분이 넘게 진행된 사전 MC의 토크 이후에야 시작돼 40분가량 진행됐다. 나머지 30분은 객석과의 즉석 Q&A 시간으로 꾸려졌다. 게다가 그의 농담 같은 '모두 까기'는 블랙 유머를 넘어서 관객들에게 불쾌함을 안기는 '셀프 디스'였다. 티켓값 8만8000원을 내고 예매 전쟁을 뚫고 온 관객들에게 이 짧은 '셀프 디스'가 그 값어치를 했을까. 한국형 스탠드업 코미디쇼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듯하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