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음악과 약간 거리를 두고 지냈죠." 무려 13년 만이다. 지난 2006년 9집 앨범을 발매한 김현철이 긴 공백을 깨고 정규 10집 앨범으로 돌아왔다. 데뷔 30주년의 그는 공백과 컴백에 대해 깊이 있는 속내를 솔직하게 꺼내놨다.

김현철은 13년이라는 긴 공백을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 그냥 지겨워졌다"고 짧게 정리해버렸다. 재미가 없어진 이유도 모른단다. 눈만 뜨면 음악 생각뿐이었던 19살 가수 김현철이 가졌던 에너지는 소진된 지 오래였다. 그저 음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지겨움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음악이 잘 나오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악기들도 하나둘씩 처분했다. 음악 작업에 사용하는 컴퓨터도 없앴다. 대신 라디오DJ,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등 음악 외의 활동을 하고 지냈다. 음악 활동은 실용음악 전공생들을 위한 수업, 거기까지였다. 김현철은 "음악이 다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으면 음악을 다시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지펴준 건 지난 1989년 발매된 1집 앨범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1집 앨범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 최근 시티팝 열풍이 불면서 김현철의 음악들이 '시티팝의 정수'로 재조명받고 있다. 김현철은 "'내가 30년 전에 했던 것과 비슷한 음악을 발표해도 요즘 젊은 친구들이 찾아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음반을 내보자 싶었다"고 긴 공백기를 깰 수 있었던 계기를 설명했다.


1년 전 이맘 때 쯤 김현철은 악기와 컴퓨터를 다시 샀다. 그는 "한 달 정도는 악기와 프로그램을 다시 좀 배우고, 지난해 5월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오래 진행했던 MBC FM4U '오후의 발견'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새 앨범 녹음에 돌입했다.

1집에 대한 향수로 시작된 앨범인 만큼, 앨범의 외적인 형태도 과거의 것을 택하고 싶었다고. 김현철은 "LP를 내려니까 시간 제약이 있더라. CD 같이 한 장에 100분씩 들어가는 게 아니라, 8곡 정도밖에 못 넣더라. LP에 중점을 두니까 자연스럽게 더블 앨범을 결심했다. 테이프도 더블앨범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김현철은 5곡이 수록된 첫 번째 10집 앨범 '프리뷰(Preview)'를 지난 23일 먼저 발매했다. 올 가을 쯤 프리뷰가 아닌 진짜 10집 앨범의 본 편을 내놓을 계획이다.

감성도 30년 전 그 때 그 감성을 담았다. 억지로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1990년대 감성"이라는 김현철은 "요즘의 감성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악기들도 빈티지로 돌아가고 있다"며 웃었다.

다만, 편곡을 후배 작곡가에게 맡기거나, 20년도 넘게 차이나는 후배 가수들을 객원 보컬로 초대해 세련된 변화를 꾀했다. 김현철은 타이틀곡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를 불러준 그룹 마마무 화사와 휘인, 편곡을 맡아준 조커, '드라이브(Drive)'를 부른 죠지 등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그는 "음악이 마음에 든다. 내가 아는대로 했으면 그렇고 그런 발라드가 됐을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작업은 재미있었어요. 엄밀히 따지면 다르겠지만, 1집 때 느끼던 그 느낌이었어요. 하고 싶은 대로 했죠. 예전엔 앨범이 잘 되든 못 되든 음악을 하는 게 좋고, 감사했거든요. 제 노래가 나오는 게 좋았고요. 그런데 2집, 3집 가면 갈수록 노림수나 생각이 들어가고,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됐죠. 그러면서 음악이 변질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제 음악은 9집까지 오면서 변질이 많이 됐던 거죠."


데뷔 30주년이 돼 돌아보니 오히려 정점을 찍었던 전성기 같은 건 김현철에게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추억이다. 그는 "전성기는 곱씹으면 좋은 추억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는 안 좋은 추억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사실은 계속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았는데, 그땐 내가 날아다니는 걸로 착각했던 것 같다"며 의연하게 웃었다. 그는 주목받지는 못 했지만 열정이 뜨거웠던 1집 때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간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30년이 지난 현재는 꾸준히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고. 김현철의 1집은 '한국 100대 명반'에 꼽힐 정도로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이에 정규 10집 앨범의 성적에 대해서도 멀리 볼 수 있는 여유가 엿보였다. 김현철은 "오늘 내는 이 앨범이 30년 후에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그 평가를 준비하는 거다. 그걸 위해서라도 정성을 다해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모로 열 번째 정규 앨범은 의미가 깊다. 긴 시간 동안 에너지를 재충전해 돌아와 만든 앨범인 데다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준 앨범이다. 무엇보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음악에 박차를 가해볼 생각인 김현철. 그는 "이제부터는 짐을 다 벗고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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