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더 이상 레거시 미디어와 OTT(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경쟁은 무의미해졌다. 글로벌적 인기를 끌고 있는 K-콘텐츠에 OTT 공룡들이 하나둘씩 거액을 베팅하며 체급 싸움에서부터 상대가 안 되고 있기 때문. 공존을 위해선 OTT에 기대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레거시 미디어다.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글로벌 대세 된 K-콘텐츠

올해 초만 하더라도 부동의 OTT 1위 넷플릭스의 입지는 위태로웠다. 국내에서 무려 4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지만 1월부터 점차 하락세를 띄기 시작했기 때문. 미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년도 대비 넷플릭스의 점유율은 30% 이상 감소한 20%대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선 아마존프라임과 훌루, HBO맥스와 디즈니+ 등이 이름을 올렸다.

위기가 찾아온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경쟁력 있는 다수의 OTT가 등장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 경쟁사들이 킬러 콘텐츠 및 킬러 IP(지적재산권)를 하나둘 확보하며 힘을 키운 반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작품들은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구독자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 심지어 국내에서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 논란 및 조세 회피 혐의가 공론화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가벼이 넘기기엔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구독자들이 넷플릭스를 떠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유저 수는 서서히 감소했다. 넷플릭스의 MAU(월간순이용자수)는 지난 1월 자체 최고 수치인 899만 명(닐슨코리아 클릭 기준)까지 치솟았지만, 계속해 하락세를 띄더니 7월엔 790만 명까지 떨어졌다. 반면 웨이브와 티빙은 전년도 대비 각각 50만여 명이 늘어난 388만 명, 279만 명을 기록하며 넷플릭스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

다만 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부활을 이끈 건 그 무엇도 아닌 한국 작품들이었다. 그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영화관계자들의 말이 통한 순간이었다. 시작은 '킹덤: 아신전'과 'D.P.'가 이끌었다. '킹덤: 아신전'은 이미 성공한 '킹덤' 시리즈의 프리퀄답게 국내외로 큰 인기를 끌었고, 'D.P.'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군대의 실상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여기에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까지 더해지며 넷플릭스는 더할 나위 없는 3분기를 보내게 됐다. '오징어 게임'은 대한민국 콘텐츠 최초로 넷플릭스 전 세계 TV쇼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퀸스갬빗'의 최장 1위 기록도 경신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넷플릭스를 떠났던 이들은 물론 OTT에 전혀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도 넷플릭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됐고, 넷플릭스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9월 기준 넷플릭스의 MAU는 948만 명으로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했고, 10월엔 이를 훌쩍 넘더니 11월엔 1200여만 명을 달성했다. 뒤이어 '마이 네임'과 '지옥'도 큰 인기를 끌며 넷플릭스는 국내 OTT 1위 자리를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마이 네임, 지옥, 오징어 게임

◆ '오징어 게임' 잭팟, 1조↑ 번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국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10월 미국 블룸버그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공개 후 약 한 달 만에 무려 8억9100만 달러(한화 약 1조530억 원)를 벌어들였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제작에 2140만 달러(한화 약 252억 원)를 사용했기에 투자금의 약 40배를 벌었다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누린 광고 효과를 생각해 봤을 때 추정 수익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같은 달 공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신규 유료가입자 수는 월가 추정치 386만 명을 훌쩍 뛰어넘은 438만 명에 달했다. 총 구독자 수는 2억1360만 명을 돌파하며 전 세계 OTT 1위 자리를 지켜냈다. 3분기 매출은 전년도 대비 16.3% 성장한 74억8000만 달러(8조8413억 원)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7억6000만 달러(2조803억 원)로 33.5% 급증했다.

◆ K-콘텐츠에 시선 집중하는 OTT 공룡들, 위기의 레거시 미디어

넷플릭스가 '가성비' 높은 K-콘텐츠로 좋은 성과를 기록함에 따라 해외 OTT 공룡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국내 콘텐츠 시장을 향해 쏠리고 있다. 12월 기준 국내에 상륙한 해외 OTT는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등이다. '왕좌의 게임'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강력한 IP를 보유한 HBO 맥스도 국내 상륙을 준비 중에 있다.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K-콘텐츠에 배팅하는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 일례로 넷플릭스는 지난 5년간 7700억 원을 투자한 것과 달리 올해엔 무려 5500억 원을 사용하며 강력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섰고, 애플TV+는 '닥터 브레인'에만 무려 5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애플TV+의 다음 오리지널 작품 '파친코'는 시즌별 제작비가 1000억 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디즈니+ 역시 500억 원을 들여 '무빙'을 제작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당 제작비가 10억 정도만 돼도 '대작'이라고 불리는 레거시 미디어의 입장에선 OTT 공룡들과 싸움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태다. 제작비가 적으니 블루칩 배우들을 섭외할 수도 화려한 CG를 선보일 수도 없다. 광고로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해야 하지만 과한 PPL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기도 한다. 완성도가 OTT에 비해 떨어지니 시청자가 떠나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레거시 미디어는 OTT와 협업을 하는 것으로 위기를 버티고 있는 중이다. tvN과 JTBC는 2019년 11월 넷플릭스와 3년간의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KBS·MBC·SBS 등의 지상파 채널은 웨이브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았다. 다만 언제까지 OTT에 기대고 있을 순 없다. OTT 모두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기에 따라 언젠간 토사구팽 당할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는 OTT에 비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상태다. 티빙이 OTT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네이버와 협업하는가 하면 웨이브도 오리지널 IP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레거시 미디어 쪽에선 어떤 대응책도 나오고 있지 않다. 규제가 너무 심하다며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말뿐이다. 자체 콘텐츠가 부족한 레거시 미디어 입장에선 방송법을 개정하는 것만으론 OTT와 경쟁을 벌일 수 없다. 더 적극적으로 생존의 길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결국 이름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 그들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HBO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