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미나리'는 배우 한예리에게 '이해'의 과정이었다. 살아오면서 설명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자신에 대해서도 같은 과정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한예리는 배우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성장해 있었다.

3월 3일 개봉될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배급 판씨네마)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한예리는 극 중 낯선 미국에서 가족을 이끌며 다독여주는 엄마 모니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한예리에게 '미나리'와 모니카에 대한 첫인상은 명확하지 않았다. 영어로 쓰인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해 문어체로 쓰여있던 시나리오는 어떤 영화인지, 모니카는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담고 있지 않았다. 이에 한예리는 정이삭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미나리'와 모니카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이삭 감독과의 대화는 한예리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서로 유년 시절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아 나갔고, 자신이 만들어갈 모니카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스케줄 문제로 출연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예리는 다른 한국 배우를 추천해주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정이삭 감독에게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한예리는 스케줄을 정리하고 '미나리'와 함께할 수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다른 배우들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정이삭 감독이 한예리를 고집했다고. 이에 한예리는 자신을 믿어준 정이삭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른 한국 배우를 소개해준다고 한 건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고. 모니카는 꼭 한국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예리는 "모니카는 한국 정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살아온 배우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애도 없고,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은 한예리가 모니카에 접근한 방식은 지금껏 살아오며 지켜본 주변 여성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예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엄마와 할머니, 이모들을 생각했다. 제가 이모가 여섯이나 있어서 다양한 여성상들을 제가 기억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 부부처럼 어린 나이에 결혼해 자식을 키웠던 부모님을 생각했다는 한예리는 "그 시절 부모님들은 본인의 성장과 아이들의 성장이 동시에 이르는 시기라서 성장통을 겪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자식까지 길러내야 했던 부모님들의 쉽지 않았던 삶에 대해 생각하며 모니카를 만들어갔다.

또한 한예리는 모니카를 이민자처럼 연기해야 한다고 접근하지 않았다. 한예리는 "저는 오히려 모니카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모니카는 왜 제이콥을 사랑하고 제이콥과 여기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벌어진 모든 상황들을 모니카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빚만 늘어가는 농장 경영을 고집하는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도 자식들을 따뜻하게 돌보고, 어른인 줄 알았지만 엄마 순자(윤여정) 앞에서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어린아이의 모습까지. 한예리는 한 사람이자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등 다양한 모니카의 모습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영화에 담아냈다.

한예리와 함께 스티븐 연,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는 영화를 넘어 진짜 가족처럼 하나 되는 연기 앙상블로 '미나리'가 담고 있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이에 '미나리'는 현재 미국 내 시상식이란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면서 올해 미국 아카데미 유력 후보로 부상 중이다.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연일 들려오는 수상 낭보에 국내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예리는 "이렇게 좋은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작업한 건 아니다"라면서 "작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감독님이 잘됐으면 좋겠고, 내가 일조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 싶었다"고 했다.

이어 한예리는 현재 '미나리'를 향한 호평은 정이삭 감독의 힘이라면서 "감독님이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감독님을 사랑하는 지인분들이 현장에 도움을 주러 많이들 오셨다. 그분들이 어떠한 개인적 이득이나 뭔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도와주러 온 분들이다. 그분들이 영화를 도와주시고 참여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이 모든 과정들을 해내는 걸 보며 에너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모두 함께 지내면서 가족처럼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뭔가를 해냈어'라는 기쁨들을 같이 공유했다"면서 "그런 환경들이 저에게 큰 힘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미나리'는 제 필모그래피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경험으로 남을 작품이어서 또 이런 행운이 온다면 너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경험을 또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나리'가 저에게 특별한 작품임은 틀림없어요."

'미나리'는 한예리에게 부모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한예리는 "우리 엄마 아빠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애가 애를 기르게 되니 얼마나 쉽지 않았을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어느 가정이나 문제없는 집이 없지 않나. 그런 과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치유도 있고 상처도 있는 것 같다. 저도 이제는 가족과 많은 대화를 해야 할 텐데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조금씩 해보려고 노력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통해서 제가 성장한 점은 좀 더 저라는 사람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모니카를 연기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들을 할 때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이콥과 모니카가 그런 것처럼 가족을 지키는 방법들이 사람들마다 다르잖아요. 다 각자의 생각과 마음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을 더 생각하게 됐고, 부모님 세대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이해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마음을 추스르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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