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완성도의 빈틈을 빼곡히 채우는 열연이다. 80대 노인 캐릭터에 도전한 배우 이성민이 또 한 번 '인생 연기'를 남긴 영화 '리멤버'다.

26일 개봉되는 영화 '리멤버'(감독 이일형·제작 영화사 월광)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이성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남주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피칠갑을 하고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빨간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80대 노인 필주. 급기야 사고를 낸 필주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혼란이 가득한 눈빛의 필주의 얼굴로 시작되는 영화는 그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80대 노인인 필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아내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향한다. 아내가 고단한 생을 마감하고, 필주는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 돌연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에 사표를 낸다. 이후 필주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르바이트생 인규에게 차를 운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거액을 제시한다. 마침 돈이 궁했던 인규는 필주의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필주는 오랜 시간 계회해 온 복수를 감행하고, 인규는 예기치 못하게 그 복수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를 소재로 한 여타 작품과 차별화된 전개 방식을 보인다.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가진 필주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80대 노인이 되어서야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여타 작품과는 다른 '리멤버' 만의 특색이 됐다.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인 줄로만 알았던 필주가 감추고 있던 사연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그의 복수는 설득력을 얻으면서, 한편으로는 쾌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기만 했던 친일파에 대한 단죄. 이를 80대 노인의 몸으로 감행하는 필주의 모습은 공감을 넘어선 응원을 자아낼 정도로 애틋하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친일파들에게 복수를 하는 필주를 통해 역사적인 공감과 지나간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영화가 역사적 메시지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포커스는 필주라는 개인에 맞춰져 있고, 이를 통해 역사적인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제시할 뿐이다.

다만 영화의 완성도는 조금 아쉽다. 2년 전에 제작된 걸 감안하더라도, 카메라 구도나 연출 스타일이 다소 촌스럽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의 카메라 워킹은 이야기를 신파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구식이다.

완성도는 아쉽지만, 배우 이성민의 열언은 압도적이다. 80대 노인의 핏빛 복수를 가능케 했던 건 이성민의 공이 크다. 자신의 실제 나이와 맞지 않은 노인 캐릭터를 이질감 하나 없이 완벽히 소화해낸 이성민이다. 분장도 인상적이지만, 80대 노인의 자세와 말투, 움직임 등을 연구해 캐릭터에 녹여낸 이성민의 연기가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상황에 따라 바뀌는 이성민의 눈빛은 아쉬운 완성도도 생각이 안 나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일 때는 온기가 느껴지다가도, 복수를 감행할 땐 서늘하고, 알츠하이머로 기억에 착란이 왔을 땐 텅 비어버린 이성민의 눈빛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성민의 연기만으로도 '리멤버'를 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리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