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문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사람과 처녀귀신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유명한 설화다. 외로움으로 마음이 고달파하던 양생이 부처와의 내기에 이기고 고운 배필을 얻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여자가 처녀귀신인 것이다. 이토록 비극적인 이야기가 또 있을까.

여름철 공포드라마의 새로운 변신이다. 지난 30일 성공적으로 끝을 맺은 tvN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연출 박준화 극본 이대일)는, 귀신이 보이고 만져지는 주인공 ‘박봉팔(옥택연)’이 수능을 못 보고 죽은 게 한이 되어 지상을 떠돌던 귀신 ‘김현지(김소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삶을 옭아매 왔던 비극의 고리까지 끊어내게 된다는 내용이다. 비록 알고 보니 현지는 귀신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잠시 걸쳐져 있던 살아 있는 영혼이었지만.

퇴마,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에 있어서, 보는 것뿐 아니라 만질 수도 있어서 사람과 사람이 싸우듯 귀신과 싸우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새롭고 신선했다. 글 앞머리에서 언급한 설화 혹은 전래동화의 한 대목에서나 접할 법한 설정이 아닌가. 놀랍겠지만 양생 외에도 옛날 옛적 이야기들 중엔 귀신과 하룻밤 보냈다는 남자들(만질 수 있었기에 하룻밤도 보낼 수 있었을 테니)의 사연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낯선 것은 자고로 낯익은 것과 함께 있어야 제대로 인식되는 법. 즉, ‘싸우자 귀신아’가 동명의 웹툰을 기반으로 독특한 설정을 가졌으면서도 보편적인 대중의 정서에 최대한 맞추었다는 점, 앞선 드라마 ‘49일’이나 ‘오 나의 귀신님’, ‘돌아와요 아저씨’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노선을 취했다는 점(사람은 사람과 사랑해야 하며 사람과 귀신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은 특기할 만하다.

여전히 드라마 속 귀신은, 그 모양새나 성격은 작가의 취향에 따라 달라져도,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처럼, 이생의 한으로 인해 저승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존재다. 사람의 몸을 종종 숙주로 사용하는 악귀 또한, 다른 이유가 아니라 원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정된 자세를 잃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오 나의 귀신님’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것 없게 그려지진 않는다. 풀지 못한 한 때문인지 그만큼 더 끔찍하고 무서운 형상이어서, 여름밤 지옥 같은 더위에 허덕이는 시청자들에겐 충분한 공포를 안겨주었다고 할까. 특히 ‘싸우자 귀신아’는 한 차원 발전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함으로써 영화 못지않게, 실감나는 귀신의 모습들을 담아내어 공포드라마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다.

물론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준 이야기의 흐름은 구태의연하고 설득력이 떨어져, 판타지만 도드라지니 다소 유치하단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인랑(이다윗)이나 명철스님(김상호) 등의 조연들은 놀라운 기억력이나 강력한 능력을 지닌 무기 등 자신들에게 부여된,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적대자와 맞붙고 있는데, 정작 활약을 펼쳐야 할 주인공 봉팔이가 한 일이라곤 부모님의 일을 알고 분노하며 현지를 찾아 헤매고 악귀와 싸우다 쓰러졌다가, 결국 ‘현지’에게 건네받은 ‘무구’를 이용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악귀를 소멸시킨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뛰어난 몰입과 연기력으로 악귀가 쓰인 인물 ‘주혜성’을 완성한 ‘권율’이나 ‘명철스님’을 연기한 ‘김상호’ 등과 같은 배우가 있었기에 끝까지 설득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하겠다. 주인공으로서 책임을 다한 연기를 펼친 김소현과 옥택연도 빼놓을 수 없고.

양생이 귀신과 맺은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오늘날로 넘어온 사람과 귀신의 사랑, 봉팔과 현지의 사랑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던 현지가 무사히 깨어나며(봉팔을 노린 악귀의 꼼수이긴 하다만)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었다. 기괴한 형태의 귀신을 등장시켰음에도 낯섦 속의 낯익음 법칙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달콤한 로맨스까지 성공적으로 얹어 낸 ‘싸우자 귀신아’는, 이야기의 흐름상 흔히 나타나기 마련인 아쉬움은 제쳐두고, 공포드라마에 새로운 변신을 꾀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와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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