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 수없이 듣는 격언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흘려들었지만,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준비 또 준비를 한 사람이 있다.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준비한 것들을 마음껏 풀어낸, ‘트렁크’의 배우 정윤하다.

지난달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 노인지(서현지)와 한정원(공유)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로, 정윤하는 전 남편인 한정원을 향한 비정상적인 집착과 소유욕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서현을 연기했다.

정윤하에게 ‘트렁크’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조단역만 했던 정윤하에게는 주연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운명의 흐름이 정윤하를 ‘트렁크’로 이끌기라도 한 듯 김규태 감독은 전작인 ‘소년심판’에 출연했던 한 배우와 정윤하가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고 이서현으로 정윤하를 선택했단다.

3회에 걸쳐 약 12시간 넘게 진행된 오디션에서 정윤하는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4회 분량의 대본을 모두 외워 김규태 감독 앞에서 읽었다고 했다. 김규태 감독은 이서현처럼 당당하게 연기를 해내는 정윤하에게서 이서현의 모습을 봤고, 정윤하는 이서현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서현은 분명 기회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과 모험이기도 했다. 이서현을 이루는 키워드들이 하나같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틀린 사랑과 소유욕으로 비정상적인 선택들을 하는 이서현을 정윤하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윤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이서현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며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윤하는 “이서현에 대한 연결고리들을 그런 것들로 채웠다. 제가 그 사람을 납득할 수 없으면 표현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연결고리들에 대해서 생각했다”라고 했다.

물론 이서현을 이해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으로 임신을 부정하고, 태아와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고 한정원과의 이혼 이후 되려 전 남편에게 기간제 결혼을 제안하는 등 이서현의 감정선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윤하는 한정원과 이혼 이후 이서현의 기행들을 단순히 우울증으로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정윤하는 “서현이가 했던 행동들은 분명히 좋지 않은 행동이다. 전 남편의 집에 CCTV를 설치하는 건 불법이지 않나. 우울증을 명분으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서현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표현하되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기 위해 정윤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윤하가 여러 고민 끝에 이해한 이서현은 양가감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사랑을 받고 싶지만, 반면 증오하는 감정도 있는 이서현은 한정원이 “아이부터 살려달라”라고 한 시점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고 나름 혼자 설정하기도 했다고. 정윤하는 “그전까지 일반적인 소유욕 정도였다면, 그 시점부터 이서현은 과해진다. 그걸 이해하기 위해 연극성 장애, 경계성 장애에 대해서 혼자 공부하기도 했다”라고 했다.

또한 정윤하는 촬영 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김규태 감독과 함께 이서현을 예리하게 세공해 나갔다. 정윤하가 준비한 이서현을 김규태 감독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줬다고. 이에 정윤하는 “서현이를 잘 구현하는 것만이 감독님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서 김규태 감독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서현을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정윤하는 이서현에게 많은 디테일을 심었다. 일례로 이서현의 대표 색깔로 파랑을 선택한 것도 그것의 연장선상이었다. 정윤하는 “블루를 이서현의 감정적인 무드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방법들로 색깔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다”라고 했다.

이서현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던 정윤하는 베드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규태 감독과 대본을 두고 어떻게 베드신을 표현할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정윤하는 “총체적으로 말하면 베드신이나 다른 신들도 저에게는 똑같이 고민이 되고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면서 “감독님과 많은 상의를 했다. 서현이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장면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했다.

정윤하가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이서현과 ‘트렁크’이지만, 작품 공개 이후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나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윤하는 “시청자 분들의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호와 호의 관점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의견을 내주시는 것 아니냐. 그래서 모든 의견이 소중하다”라고 했다.

‘트렁크’ 정윤하가 투병을 하면서 배우 일을 할 수 있을까 낙심하던 차에 만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정윤하는 앞으로도 어떤 캐릭터와 작품이던지 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가능한 다양한 삶과 성격의 인물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정윤하는 “이런 작업들을 통해서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데에 있어서 성취감이 크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계속 새로운 감정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슈가 오는 건 즐거워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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