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 배우 이지아(본명 김지아)의 부친이 친일파로 분류된 조부가 남긴 유산을 두고 남매들과 갈등 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지아는 본인의 일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친일파 후손들이 그 유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에 반감이 있는 국민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19일 매체 더팩트는 이지아의 친부이자 친일파로 분류된 고(故) 김순흥 씨의 아들 김 씨가 11명의 남매들과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 씨는 12남매 중 막내로, 남매들은 김 씨가 자신들의 인감을 무단 사용해 위임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조부가 남긴 토지를 환매하는 과정에서 형과 누나들의 인감을 무단 사용해 위임장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지아의 사촌 A씨의 주장에 따르면 고 김순흥은 유산으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일대의 토지를 남겼다. 애초 토지는 군 부지로 수용됐으나 부대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김순의 자녀들, 12남매들이 우선 환매권을 갖게 됐다.

A씨와 더불어 남매들은 350억 원에 달하는 해당 토지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이들은 뒤늦게 이지아의 부친 김 씨가 형제 자매들의 인감 도장을 가져가 이미 169억 원 규모의 근저당권이 설정된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계약서에는 김 씨가 토지주 대표 및 위임인으로 설정돼 있다. 토지에 대한 권리의 상당 부분이 김 씨에게 있는 것이다. 남매들은 토지주 대표로 김 씨를 위임한 적이 없다며 2020년 11월 근저당설정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남매들은 김 씨를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에 대해 두 차례 불송치 판단을 내렸고 검찰도 혐의가 없다고 봤다. 11남매는 재정을 신청하고 김 씨와 계속 법적 공방을 벌이겠다는 각오다.

반면 이지아의 부친 김 씨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인감 도장을 받았다는 주장하고 있다. 이지아 측 소속사는 부친의 논란과 관련해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배우 당사자의 일은 아님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지아는 정말 고 김순흥 일가의 상속 전쟁과 무관한 인물일까.

이지아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여러 경로를 통해 공개된 정보다. 그의 조부 김순흥이 친일파라는 사실도 일부 알려진 바다. 부친 김 씨를 둘러싼 논란은 이지아의 의지와 무관할 수는 있지만, 그가 혜택을 받은 부유한 환경은 조부의 유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고 김순흥은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록된 인물이다. 1910년 경기 경성부 출생인 그는 파주군에 논 116만 7000평과 밭 22만 5000평을 소유한 대지주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37년 당시 소작 농부만 750명을 두고 있었다고 하니 손에 꼽히는 자산가였다.

친일인명사전 기록에 따르면 김순흥은 1933년부터 해방 전까지 일본에 1만 7000원어치의 헌금을 냈다. 현 가치로 수 십억 원 상당의 거액을 10년여 동안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김순흥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 받아 감수포장(紺綬褒章)을 받았다.

때로 스타는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질 경우 큰 후폭풍을 맞는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사건이라도 책임을 요구 받고 질책 당한다. 이른바 '현대판 연좌제'다. 수년 전 유행인 마냥 스타들을 상대로 연쇄 제기된 '빚투'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지아라는 한 배우에게 연좌제를 묻고자 하는 게 아니다. 조부 김순흥의 친일 행위와 그 자의 유산을 받은 부친의 부유함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들의 상속 권리를 따지는 일은 긴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고 김순흥은 김 씨에게 유산을 남겼고, 이지아는 언젠가 아버지 자산의 일부를 상속 받을 것이다.

고 김순흥 일가의 다툼은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밥그릇 싸움' 중인 김 씨와 11남매의 전쟁은 미제로 남은 숙제,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친일파의 유산을 받은 후손들이 그 자본을 바탕으로 자산 불리기를 하는 그 비극 말이다.

[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는 대중문화 콘텐츠와 이슈를 기자의 주관으로 분석한 코너입니다. 나무와 숲, 현상과 본질을 알아차릴 수 있는 혜안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