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 배우 이지아가 천륜, 부모와의 인연을 끊는 것으로 '친일파 후손'이라는 꼬리표를 잘라냈다.

이지아는 21일 소속사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보도된 내용에 대해 저의 입장을 전한다. 오랜 시간 고민하며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라도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말씀드린다”라며 신중히 서문을 시작했다.

그는 “저는 18살에 일찍 자립한 이후 부모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받은 적이 없으며, 부끄럽지만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부모와 연을 끊고 지낸 지 이미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라고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가정사에 대해 고백했다.

이지아는 오래 전 부모와 인연을 끊은 점, 성인이 될 무렵 경제적 자립을 시작한 점을 강조했다. 조부 고 김순흥이 친일 행적을 통해 쌓은 자산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매체 더팩트는 고 김흥순의 후손들이 조부의 유산을 두고 다투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들은 이지아의 부친 김 씨와 상속권을 두고 법적 다툼 중이다. 김 씨는 12남매 후손 중 막내로, 형과 누나들의 인감을 도용해 350억 원 상당의 토지 유산을 가로챈 의혹을 받는다.

이와 관련해 이지아는 일가의 다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히며 논란이 된 "안양의 토지가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된 재산이라면, 반드시 국가에 환수돼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친일파 고 김순흥이 이지아의 조부라는 사실은 연예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고, 이지아 역시 논란에 대해 한 번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굳이 먼저 조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지아는 그간 친일파 후손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년 전 민족문제연구소를 여러 차례 방문해 조부의 친일 행보를 확인했다는 점은 그가 이 논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이지아는 입장문에서 "조부의 대한 역사적 과오를 깊이 인식하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앞으로도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 겸허한 자세로 임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며 그의 가족들을 대신해 고개를 숙였다.

이지아의 조부, 친부를 둘러싼 문제들은 '친일파 후손' 논란에 연좌제를 적용하는 일이 옳은 것이냐는 의문을 남겼다. 수년 전 연예계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빚투' 논란은 이해당사자가 아닌 2,3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얼마나 소모적인지 잘 보여줬다.

'빚투'는 '모든 연좌제는 부당하다'는 사회적 합의, 비록 그 합의가 현실에서 잘 적용되지 않더라도 정당한 일이 아니라는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정서와 맞물려 제기된 이지아의 일가를 둘러싼 논란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상속권을 두고 다투는 12남매의 이야기는 한 가정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한국 근현대사의 절실한 숙제,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대중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고 김흥순 일가의 '밥그릇 싸움'을 보는 대중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광복 이후의 한국의 모든 후손은 친일 행위로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친일파의 유산을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이 상속 받는 것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 그 부가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면 이는 과거의 일이 아닌 미래의 일이 된다.

결국 이 문제는 고 김흥순의 유산을 후손들이 상속 받는 것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따지는 일이었다. 이지아에게 쏟아진 시선 역시 그렇다. 그가 조부의 유산을 두고 형제 남매와 다투는 김 씨의 재산을 다시 상속 받을 것 이냐에 초점이 있다.

이지아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상징을 품은 것과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이 사건을 지극히 공개적으로 맞닥뜨렸다. 그런 점에서 이지아의 이번 입장은 상당히 호소력이 있다.

특히 그가 민족문제연구소를 수 차례 방문했다는 사실은 논란을 회피하거나 정당화하는 친일파 후손들과 달리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는 뜻이라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이지아는 김 씨, 아버지와 인연을 끊어 자신에게서 친일파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지웠고, 조부와 김 씨의 유산 상속을 일부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이 누군가의 후손이 아닌 의지를 가진 독립적 존재임을 보여줬다.

이 모든 게 진심이라면, 이지아는 귀감이 될 만 하다. 친일파 2,3세대 후손들과는 다른 이지아의 선택을 몹시 환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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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